“다시 생각해 볼 순 없는건가?”

-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두개의 이윤기 감독의 작품을 보았다. “멋진 하루”와 오늘 본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밤에 숙제를 하면서 본 “멋진 하루”는 잔잔함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동시에 ‘내가 어렸더라면 아마 공감하지 못 해서 굉장히 지루했을 법한 영화’ 이기도 했다.  헤어진 이후에 다시 만난 옛 애인. 그런데 그 헤어진 이유가 싫어서라기 보단 더 조건이 좋은 남자랑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그 남자가 그 좋던 직장을 그만 두었기 때문에 결혼하지도 못 했다.  그 뒤로 결혼을 핑계로 그만 두었던 직장도 없이 홀로 사는게 어려워 옛 애인이 갚지 않았던 자신의 돈을 다시 받기 위해, 경마장으로 옛애인을 찾아가고, “하루동안” 그 옛애인과 이곳저곳을 돌며 그 돈의 액수를 채우기 시작한다. 

헤어진 옛애인을 돈을 받기 위해 찾아간다라는 표면적 이유.  밖에서 보기엔 참 황당해 보일지도 모른다.  나도 예전에 애인에게 돈을 못 받고 헤어진 것이 있는데 찾아갈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돈 보다도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한마디 진심어린 위로의 말과 따뜻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때는 가장 많이 기댔지만 이제는 기댈 수 없는, 그래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보다도 어찌보면 더 가까운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돈을 받으러 다니는 내내 그녀는 남자에게 계속 짜증을 낸다. 그리고 때로는 질투도 한다.  하지만 돈보다도 그녀에게는 보고 싶은, 그리고 짜증을 받아줄 수 있는 그가 있었기 때문에 “멋진 하루”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저그런 친구 사이에는 짜증을 절대 내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잘 지내야 하니까.  여자로서 친한 친구들 사이에도 짜증은 내지 않는다.  여자들은 살짝만 삐지고 토라져도 우정에 금이 갈 수 있는 섬세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지만 남자친구에겐 다르다.  엄마에게 하듯 편하게 짜증을 낸다.  마음의 마지막 벽마저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바로 여자에겐 남자친구이다.  그래서 현재 바닥을 치고 있는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기대어 짜증을 부리고 하루를 같이 멋지게 보낼 수 있는 최후의 사람은 옛 애인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어렵지도 않은 단순한 이야기를 여러사람들을 만나는 짧은 에피소드 여러개로 묶어나가며 큰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멋진 하루”라는 영화의 매력이었다.  그래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새로운 영화 또한 기대되었다. 이번엔 또 어떤 잔잔한 이야기를 인상깊게 풀어나갈까 해서.

이 영화는 다른 두시간이 넘는 영화에 비해서는 대사가 매우 적다.  인물의 단독컷도 많고 표정, 몸짓, 그리고 분위기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영화다.  촬영 장소도 딱 두군데.  자동차 안과 집.  집은 2층, 1층, 그리고 지하실. 이렇게 총 네군데에서만 촬영했다.  스토리도 한줄 요약 가능하다.  바람난 아내의 짐을 싸주는 한 남자, 그리고 그 아내의 마지막 하루.  그런데 원작의 몇장도 안 되는 단편을 이 감독은 두시간 넘게로 길게 풀어냈다.  이 영화의 숨은 매력이 뭘까? 

영화의 제목과 관련 지어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마지막 하루를 보내는 이 커플은 계속해서 머리 속으로 생각한다.  이 사람을 사랑하느냐, 하지 않는냐. 그래서 잡고 싶어하기도 하고, 그냥 깨끗이 보내주려고도 하고.  그런데 그런 행동이나 말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단지 그런 마음은 오직 흔들리는 눈빛에서만 나타난다.  처음엔 화를 내지 않는 이 남자가 의아했다.  왜 화를 내지 않을까… 그런데 이 남자가 말한다.  이미 돌아선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는 그녀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괜찮아.”

나도 입버릇처럼 말했던 경험이 있다.  ”괜찮아.”  그런데 마음은 괜찮지가 않다.  힘들고 아프도록 괜찮지가 않은데 그 사람한텐 괜찮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눈물은 나는데 괜찮다고 말한다.  뛰어가서 붙잡고 싶은데 괜찮다고도 말했었다.  사실 속마음은 이랬다.  

‘하나도 괜찮지 않아. 나는 정말이지 괜찮지 않아.  화가 나. 아주 많이. 돌아버릴 것 같애. 미칠 것 같아.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돌아와서 나를 돌아봐줘.  가지 말아줘.  나 지금 힘들어.  나를 사랑해줘.”

늘 마음은 이랬다.  하지만 늘 말하지 못 했다.  그 남자도 그랬던 것 아닐까.  쿨하게 보내주려고가 아니라 힘들어서 무너져가는 자기 자신을 다져 잡기 위해서 최면을 건거다.   자기 최면을.  무너지고 쓰러지려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다져잡은거다.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레스토랑을 예약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마지막을 행복하게 함께 하고 싶어서 레스토랑을 예약했을 것이다.  비와서 다리가 무너져서 서울에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살짝 반가워하며 커진 눈망울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의 그 남자에게.  그걸 듣는 남편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따위는 안중에 없고 오직 전화에만 온 신경이 가 있다.  그리고 잠시 반가웠던 그 마음은 롤러코스터 밑으로 한없이 떨어지듯이 다 쏟아내진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내색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양파를 썰다가 매워서 나는 눈물은 내 마음의 솔직한 눈물과 섞여서 비처럼 같이 흘러내려간다.  마음이 아파서 어지럽지만 진정하려고 하는 그에게 양파 향은 계속 눈 속에 매운 향을 가득히 피워댄다.  파스타를 접시에 담아대며, 낯선 집에 어려워하며 조용히 앤초비를 먹는 새끼고양이에게 아내는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질거야.”

그런데 갑자기 영화가 끝나버렸다.  둘이 다시 서로의 흔들리는 맘을 알게되고 다시 잘 되진 않을까?  그런 결말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잠깐 당황해버렸다.  엇! 벌써 끝이야? 하고.  그런데 잠시 문득 생각해보니 아. 그렇구나 싶다.  다시 잘 되는건 영화지, 현실은 늘 이렇지.  맞아.  현실은 늘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 하고 그대로 사랑이 끝나버리는 쪽을 택하지.  맞아….. 그런 생각을 해보니 아, 이게 이윤기 감독의 매력인가 싶다.  ”멋진 하루” 영화의 결말 부분도 그러했다.  하정우를 전철역에 내려준 전도연은, 전철을 탄 하정우를 앞질러 그가 도착할 역에 미리 가 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백미러로 그가 걸어가는 길을 지켜본다.  그리고 허-참. 훗하며 ‘내가 뭐하는거지.’ 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떠난다.  그때도 역시 마찬가지의 느낌으로 보았었다.  해피엔딩이 아닐까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헤어진 애인 다시 붙잡아봐야 뭐하나.  헤어진 애인은 헤어진 사이인데.  그리고 우린 다시 제대로 되지 않는데.  한번 헤어지면 또 헤어질텐데.  살짝 흔들리는 마음으로 그리움으로 한번 쳐다보고 훗하고 다시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모두 한번쯤 경험해 봤음직한 그런 일들 아닐까?  

요즘 트렌디한 로맨틱 코메디의 흐름; 남주나 여주 중 한쪽이 상류층이나 잘 나가는 재벌, 나머지 한쪽은 서민이나 비주류, 이런 경우에 둘이 잘 되는 것으로 끝나는 동화 속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현실의 그 느낌 그대로여서 이 감독의 영화는 나로서는 크게 매력이 있다.  물론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0.00000…..1%니까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고, 그런 로망이 있기 때문에 열혈 애청자들이 생기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오히려 현실의 99.9999999….9% 아프고 실현당하고 괴로워하고 그리워하고 헤어지고 그런 이야기들이 더 공감이 된다는 말이다.  

현실의 멀지 않는, 가까운 이야기를 어떻게 짧은 시간 60분 내에 풀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첫 5분 내에 인물의 배경과 성격을 풀어내고 동시에 그들간의 갈등을 바로 등장 시키며 나머지 55분 동안에 제 2,3의 갈등을 엮어내고 풀어낼 수 있을까.  아님 풀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져버릴까.  이것저것 생각이 많이 드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며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우선 배우들의 동작과 표정이다.  특히나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손가락 움직임, 한숨, 침 삼킬 때 목젖 하나하나까지 잡아낸 그 시선이 매우 칭찬해줄 부분이다.  또한 중간 중간 삽입된 비오는 장면들이 매우 훌륭하게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촬영 상에서 좋았던 부분은, 임수정이 베란다를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부분이다.  안팎으로 왔다갔다 거리는 부분을 사이로 화면을 잘 분할하였고, 유리를 통해 투영되 두가지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 매우 좋았다.  사실, 유리를 통해 두가지의 다른 모습을 가장 잘 담아냈던 작품은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인데, 그 영화에서는 각자 다른 두 사람의 교감을 유리를 통해 잘 드러냈고, 또 유리 자체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벽으로서의 역할을 잘 했다면, 이 영화에서 베란다 유리는 흔들리는 두가지 마음, “사랑한다”와 “사랑하지 않는다” 사이의 들락날락 거리는 마음의 벽, 실제로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두가지 마음의 벽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배우의 연기로서 좋았던 장면은, 베란다 유리 앞에 서있는 현빈이 뒤에 있는 임수정을 뒤로 힐끗 보았다가 한숨을 쉬었다가 눈을 돌리는 장면이다.  대사도 없었고 크게 임팩트가 있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재미가 있었던 부분은, 임수정의 그 남자에게 전화오는 부분이었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분명 내가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배우인데….누구지? 누구지? 하다가 알아버렸다.  이 감독의 전작, “멋진 하루”에서 나왔던 배우 하정우씨의 목소리다.  또 그 장면에서 고양이 주인으로는 “여자, 정혜”에서 나왔던 김지수씨가 까메오로 나왔다.  재미있는 부분이다.  

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점은, 물건 하나하나를 챙길 때마다 어떤 추억이 어린 듯 한데, 가끔은 어떤 추억이 어렸는지 비추어 주었다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타 책에 관한 에피소드는 배우들의 말로써 풀어냈었지만, 분홍 셔츠나 아끼던 찻잔, 가방의 경우는 무언가 더 사연이 있을텐데 그냥 관객들은 모른채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또한 가끔 어떤 옷들을 보면서 옛추억에 잠시 그리워할 때가 있는데 그런 옛추억까지 조금더 풀어 내 주었더라면 관객들도 더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임수정의 “괜찮아”라는 대사로 그냥 끝을 내버렸는데, 그 대사 후에 살짝 맑아오는 하늘 또는 빗방울이 이제 점점 얇아져서 풀잎사귀에서 바닥으로 살짝 미끄러져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 정도로 마무리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비온 뒤에는 다시 맑은 날이 오니까.  그게 더 “괜찮아”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건 아주 미세한거지만 현빈의 파스타 만드는 씬에서는 파스타 면을 삶는데 소금을 엄청 많이 두 숟가락씩이나 넣었는데, 그리고 올리브유를 완전 들이 붓던데 그렇게 했다간 완전 느끼하고 짜다.  소금은 아주 적게, 그리고 올리브유도 티스푼으로 한스푼 정도면 되는데 너무 많이 넣는 것 같아서, 심각한 영화에 피식하고 웃게 되었다.  또한 마늘도 너무 굵게 썰고 후라이팬으로 올리브유에 볶는 장면에서 너무 후라이팬을 뒤짚어대서 계속 웃었다.  심각하고 진지한 영화라면 그 정도까지 체크해주는 섬세함까지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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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오늘 오랜만에 책이 너무 읽고 싶어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여러가지 책만 읽었다.  드라마 보는거나 만화책 보는 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는 나이긴 하지만 책은 역시 또 책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 우선 아직 다 안 읽었지만 앞의 챕터 하나 정도 읽은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 상고사.”  

어렸을 때부터 국사나 세계사 등 역사 관련 책이나 소설, 드라마, 영화는 정말 열심히 보는데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 상고사”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초등학교 때 보았던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가 어떤 정치적 소견 내에서 씌여졌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알게 되었고 역사라는게 어떤 식으로 판단하여야 하는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기자조선이 거론이 되는지, 고려의 역사가 그닥 제대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지, 고구려의 위대한 전투인 안시성 싸움이 왜 비중이 약하게 다루어 지고 있는지, 발해의 역사 사료가 왜 남아있지 않은지, 일본인들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할 때 어떤 식으로 반박해야 하는지 여러가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예전에 고등학생 때, 외국어 과목 외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과목이 국사였다.  정말 훌륭한 국사 선생님이 있었는데 국사 책 내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의 세부 사건까지, 그리고 역사적 배경까지 모두다 풀어서 설명해준 선생님이셨다.  다들 그 시간에 졸려하고 많은 학생들이 자곤 했지만 나만은 모든 내용을 다 깨알같이 교과서에 필기하면서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들었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있노라면 그 시대에 내가 지금 다녀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방송했던 사극들은 아빠 때문에 내가 거의 다 보았었는데 그 사극 중에는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많이 달랐던 것도 있었고 정반대였던 내용도 있었다.  또 몰랐던 내용들도 있었다.  물론 사극이라는게 허구성을 지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반대나 다른 내용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신채호 선생님도 이런 내용을 지적하고 있다.  역사를 볼 때 과장되고 부풀려진 것은, 자랑스러워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거짓을 고해서는 안 되고 또한 가짜들 중 가짜와 가짜들 속에서 진짜 역사를 발견해 내는 안목도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고조선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가 왕조가 바뀔 때마다 뒤엎어지고 끊어지고, 승자만의 역사만 남고 패자의 역사는 묻혀지는 그런 역사가 아니라 모두다 계속해서 이어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그 당시 같이 존재 했던 모든 나라들은 서로의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불교에서 유교로 넘어오면서 그리고 중간에 몽고의 통치와 일본의 통치가 있으면서 다른 나라로부터 개입된 시각으로 적혀진 주관적인 역사 기록도 적극적으로 배제할 수 있어야 올바른 역사 시각을 지닐 수 있다고도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는 모든 학문의 근간이다.  역사를 모르고서야 어찌 대한민국 국민이라 하겠는가.  내가 비록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시민권자이긴 하지만 나는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나를 Korean이라 말하겠다.  미국의 몇백년의 짧은 역사와 한민족의 몇천년의 역사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또한 요즘 내 또래 친구들을 보면 국사를 제대로 빠삭하게 아는 이가 없는데 그건 아주 부끄러워할 일이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역사를 알지 못 하면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물어오면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권이 교육 과정 개편 중에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추진하던가 그랬는데 국사와 국어는 필수다.  한나라의 얼과 정신이 없는 한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할 수 있겠다.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일제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으로 굳건하게 한민족의 역사를 재조명하였던 신채호 선생님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또한 과장도 축소도 모두 다 채찍질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역사 문헌을 정리하고자 노력한 모든 사학자들에게도 고개 숙여 깊이 감사를 드린다.  다들 역사를 한번쯤 돌아보고 외국인들이 한국 박물관에서 어떤 것에 대해 물어오더라도 자신있게 답변 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에 대해서만큼은 깊은 경외심을 갖고 대했으면 한다.  이것이 이책이 시사하는 바다.  시간이 나면 삼국지가 아니라 우리 나라 역사서 한권을 사서 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 오랜만에 읽은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던 건 초등학교 때? 아님 중학교 때? 인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아직 많이 서투른 나이였었고 어른들과 아이들의 벽이 그리 크다는 것도 많이 깨닫지 못 하는 나이였기 때문에 이책이 지닌 아주 큰 의미는 제대로 깨닫지 못 한 채 그냥 그런 책으로 느껴졌었다.  대학 온 이후에 다시 한번 읽으려고 했었으나 무슨 일 때문엔지 읽다가 말았었다.  아마 다른 바쁜 일로 인해 그냥 읽다가 말아버린 채로 그냥 시간이 흘러버렸다.

오늘 이책을 접할 때는 진심으로 이책을 가슴으로 마주하고 읽게 되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했다.  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했을까.  어렸을 때 이 앞머리 부분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이 동화를 읽나?  어른들에게 동화가 필요한가?”

막상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동화에 다시 목 말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른들의 이야기와 글 속에는 맑고 영롱하고 깨끗한 세상이 아닌, 폭력과 상처, 비난, 무질서, 부패가 난무한 세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말머리를 접하였을 때는, 아…작가가 어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시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어린왕자와 주인공은 한 사막에서 만난다.  어린왕자는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주인공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은 물을 가지고 비행기를 고치며 답변한다.  비행기를 고치느라 바빠죽겠는데 계속해서 말을 거는 어린 왕자에게 어른인 주인공은 그냥 무성의하게 답변을 하고 어린 왕자는 말한다.

“내가 아는 다른 어른들과 똑같은 대답을 하네요.”

어릴 때의 나는 남이 어떤 질문을 물어오면 진심을 가지고 대답을 했다.  진심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남보다는 내가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나와는 별 필요가 없다고 하는 질문에는 대답을 안 해버리거나 다른 이야기로 전환을 하거나 대강 대답을 하거나 하는 식의 방식을 취하였다.  상대방에 대해 무성의해진 것이다.  어릴 때,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진정성이 피상적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필요할 때만 대답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외면해버리는… 이런 변화를 어린 왕자가 지적을 한 것이었다.  

어린 왕자에서 묘사 되는 지구는 참으로 무섭도록 쳇바퀴 돌듯이 똑같이 도는 세계이다.  철도를 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도 못 한 채 왔다갔다 하루 속을 살고 있고 그 하루 또한 등대지기의 하루와 같이 이곳의 하루가 저곳의 하루로 전염이 되고 그렇게 지구 한바퀴를 돌면 또 다른 이곳의 하루가 시작될 뿐이다.  사회는 자신과 남을 주인과 신하로 생각하는 인간들과, 자만심이 극에 달하는 인간들과, 소유욕이 강하여 눈에 보이는 헛된 것만 계산하고 집착하는 인간들과, 직접 경험은 안 하면서 들은 이야기들로만 그럴듯하게…가짜를 진짜같이 정리하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고 그렇게 묘사된다. 이곳 삭막한 지구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하나 삶의 의미가 있다면 바로 관계이다.  여우가 가르쳐준 길들임의 관계.  처음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사물이고 생물이지만 조금씩 일상으로 스며들고 그 사이의 거리가 좁혀드는 의식을 치를 때,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관계가 맺어지고 마음을 주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린 왕자와 여우와의 관계도, 주인공과의 일주일간 사막에서의 만남도, 그리고 어린 왕자의 소행성 별 장미와의 관계도 다 이 관계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처럼 관계를 한번 더 생각해보고 그것으로 인해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았으면 하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관계에 상처 받은 나 같은 사람이, 다시 마음을 극복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도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어서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지언정, 또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떤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사는 것이 또 큰 의미를 담은 삶이 아닐까 생각된다.

  •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노인,” ”사람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

톨스토이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들에서 많이 그리는 경향이 있다.  첫번째 단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서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에게 무엇이 깃들여져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져있지 않은지,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나머지 소설들에서도 인간의 베품과 자비,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른채 앞으로 살 날만을 걱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는 날 동안 현세에 대한 집착이 강하며 쓸데 없는 걱정도 많이 하고 신에 대한 원망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다 죽고 나면 쓸데 없음을 이야기 한다.  아무 것도 자신에게 남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며 인간 또한 본성으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고, 이 마음을 다른 이에게 베풀면 곧 또 다른 이에게 그 베품이 옮겨가리라고 톨스토이는 이야기하고 있다.  또 신약성서에서 이야기하듯이 가장 모자란 이에게 베푼 것 하나가 바로 하느님에게 베푼 것이니, 모든 이에게 평소에 잘 하란 교훈을 주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베풀었을 때, 나는 그만큼 똑같이 남에게 베풀었는지…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나를 아는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는 잘 베풀었는지 반성하여 보았다. 아마도 낯선 이들에게는 냉정하였던 것 같다.  길거리 빈민들을 그냥 지나치고 무관심으로 넘겨버리고 그러하였던 것 같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을텐데… 그리고 혹여 베풀어도 나의 전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아주 최소한 만큼만. 그렇게 하였던 것 같다.  이런 나의 모습을 꼬집는 소설이었다, 톨스토이의 단편들은… 부족한 나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사랑의 묘약,” “한시간만 더”

슈니츨러 작가 본인의 삶을 보면 카사노바의 삶을 옮겨놓은 것과 같았다고 말한다.  ”사랑의 묘약”이라는 이 소설은 여자를 만나고 만나도 다 자신의 것이 아님에 목말라하고 그래서 그 여자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그러하기에 사랑의 묘약을 여자들에게 사용하는데 처음 사용한 사랑의 묘약은 여자들에게 가장 황홀했던 순간을 고백하게 만든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자들은 주인공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기억들을 고백한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다시 다른 묘약을 찾아 길을 떠난다.  두번째 찾은 사랑의 묘약은 바로, 여자들의 과거의 기억을 지울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현재의 이 남자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역시 여자의 과거와 현재를 소유할 뿐 미래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너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났을 때 세번째 사랑의 묘약을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미래에도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고 그만 영원히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묘약의 사용은 그 소녀를 주인공의 손에서 죽게 만든다.  죽음으로써, 더이상 다른 사람은 사랑하지 못 하고 오직 그 남자만 영원히 사랑 할 수 있게 됨을 말한다.  

우리는 사랑에 관한 착각을 한다.  과거의 사랑에 관해 질투하고, 현재의 사랑을 의심하며, 미래의 사랑에 대해 맹목적인 사랑을 강요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바뀌는 법.  늘 한결 같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과거의 사랑은 과거일뿐, 현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걸 있는 그대로 믿어주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의심한다.  그리하여 묻고 또 묻고 자멸을 초래한다.  결국 자기만 더 비참해지는 것이다.  또한 사랑이 작을 때도 있고 클 때도 있고 사랑이 변할 수도 있는 물 흐르는 것과 같은데 늘 똑같이 균등하게 한결같음만을 고집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부모형제 관계가 늘 한결같을 수 없듯 오르락 내리락이 있듯 연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오르락 내리락이 있는 것이다.  또한 부모형제 관계는 혈육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어쨌든 간에 평생 지속되지만 연인이나 부부 관계는 혈연적으로는 남남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끝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염두해 두어야 한다.   너무 집착하지 말고 자연스레 두어라.  그게 슈니츨러가 말하는 바인것 같다.  

두번째 작품에서는 인간의 목숨이라는 주제로 바꾸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역시도 주제는 같다.  목숨은 천사와의 거래로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정하여 진 것이므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노력을 될 수 없는 일이라면 너무 지나친 집착이나 욕심 등이 인간을 결국 자멸시킬 수 있기도 하다는 것을 슈니츨러는 경고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끝났을 때 그 남은 감정에 집착을 많이 해보았던 나로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그 감정을 버리는 것도 참 힘들다고 감히 변명하고 싶다. 

  • 김영랑 시집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운 한국 근대시.  그게 바로 “돌답에 속삭이는 햇발”이었다.  가사가 참 보드랍고 아름답고 영롱하다. 그렇게 배웠던 것 같고 내 인상도 그때는 그러하였다.  역사적 배경도 그냥 머리 속으로만 외웠을 뿐 가슴으로 시를 읽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그의 다른 시들을 읽으니 나라 잃은 슬픔과 애잔함이 참으로 많이 묻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을 읽으니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 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라고 적은 조국 해방의 강한 염원이 참으로 눈물 나게 슬프다.   ”독을 차고”란 시에서 말하길,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라 한 외로운 독립운동의 그 의지.  붓을 두번이나 꺾으면서 저항하신 그 문단과 조국애에 관해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고 이 후손은 말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용철 시집

예전에 수능 언어영역을 위해 현대 시를 공부하던 중에 우아- 하며 감탄했던 시가 있었는데 바로 박용철 시인의 “바다와 나비”라는 시이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완벽한 호흡과 이미지. 그리고 감성의 표현이 너무나도 그림 같아서랄까.  그의 다른 시들도 읽어보았다.  ”십오야”나 “굴뚝” 그리고 “병든 풍경” 등은 시가 아니라 마치 한편의 수채화 같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지는 이미지가 슬픈 그 당시의 현실을 평화로운 자연과 대조하여 보여주는 듯 하다.  또한 ”데모크라시에게 바치는 노래”나 “곡 백범 선생” 등의 시에서는 민족 의식을 강하게 보여주어 한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지금 존재하는 건, 이런 수많은 문호 등 애국자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에게 우리는 깊이 감사하고 존경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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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보고 읽고…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삶의 이유도, 죽음의 이유도,다 사랑 때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
누구라도 다 불행한 면이 있고 상처가 있고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다들 열심히 싸우고 있다.
나는 나의 상처 극복을 위해지난 4년간 부단히도 노력했고이제야 조금 나에 대한 상처가 치유된 듯하다.상처가 치유되고 나니 나를 사랑할 수 있더라…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내 삶을 사랑할 수 있고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 해운대
한국은 지진/해일 지역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특히나 요즘 같이 전세계적으로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외국에서는 전쟁 위험이 제일 큰 국가로 손꼽히는 나라인데정작 우리들은 너무 위험이라는 것에 대해 불감증인 것은 아닌지.
전쟁을 제껴두고라도재해에 대한 대책/대비는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여름 장마 때 홍수가 나도 매일 피해를 보는건 가난한 국민들뿐.
우리도 이제는 재해복구 위원회가 아닌재해 예방/대책 마련에 시급히 힘써야 할 때.

미드 - Spartacus 시즌1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만 하는 고대 로마와무한 경쟁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모습은 그닥 다르지 않다.
처절하게 남을 죽이는 와중에 스파르타쿠스는 질문을 던진다.나는 왜 남을 죽여야만 하는가.자유인이라면 죽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검투사 노예 신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최종적으로 자유를 선택한다.그리고 다른 동료 검투사들과 함께반란을 일으킨다.
쫓고 쫓기고 남과의 경쟁을 일상으로 하는 우리에게그 행위 자체의 이유를 질문으로 던진다.
내가 경쟁하며 열심히 사는 이유는 뭘까.나는…살아 숨쉬는 것을 통해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느끼기 위해서..

미드 - Grey’s Anatomy - 시즌 1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인간성, 스킬, 열정, 야망 그리고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사랑그것을 잘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사랑에 빠진 그레이와따뜻한 인간애로 환자들을 돌보는 조지,그리고 실수를 공개적으로 인정할 줄 아는 버크가 인상적.
특히나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메르데스와 데릭의 아픔이참 가슴 속 깊이 와닿았다는…앞으로도 계속해서 시즌 주욱 달릴 예정 :)

만화 - 토끼 드롭스
간만에 보는 따뜻한 만화.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그리고 얼마나 내가 아직 어른이 되기에 부족한지스스로 반성할 수 있게 해준 만화.다음 편이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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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영어판 “Digital Fortress” 완독!

원서책 오랜만에 completed!

이게 몇년 만인가!!

처음 영어로 읽은 책이 스웰에서 읽은 “위대한 개츠비”였는데, 영어 실력이 꽝이던 대학교 1학년 때 읽어서 단어도 하나도 몰라서 내용 파악이 제대로 안 되었고 지금까지도 내게 그책은 가장 졸린 책이라는 느낌으로 남아있다 -_-;

2학년 때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처음 가서 Klimt의 The Kiss 그림이 표지로 된 “Kiss”라는 소설책을 월마트에서 사서 1달동안 5 chapter씩 읽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제대로 읽은 책이어서 참 정들었는데, 다 읽은 그 시점에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비행기 안에 놔두고 내려버렸다 -0-;

그 뒤로도 많은 소설책을 샀지만, 매번 읽다 말았었고 재작년에 산 Digital Fortress도 맨날 chapter 3까지 계속해서 읽다 포기했었는데 미국 가기 전엔 한번 책을 제대로 읽어보리라 맘 먹고 다시 책을 잡았다. 한의원에 가면서 전철 타는 시간 왕복 총 1시간 40분과 길거리를 걸어다니며 틈틈이 읽어서 총 7일이 걸렸다. GRE 때 외웠던 단어인데 많이 까먹은 단어들이 많았었고 그 기억을 다시 되찾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다. 또 독해가 느린 내게 속독 실력을 향상 시켜준 것 같아 좋다.

“다빈치코드”의 작가인 Dan Brown의 처녀작인 “Digital Fortress”. 이 책을 처음 샀을 땐 우리나라에 번역본 조차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다. 얼마전에 검색해보니, 두권짜리 번역본 소설로 나왔더라. 다빈치코드를 먼저 보고 나서 그런지 그것에 비해 좀 미흡하고 엉성하고 아쉬운 부분들이 중간중간에 있었고, 너무나 많은 우연의 남발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1998년에 컴퓨터 보안과 암호학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썼다고 하니. 그것도 그런 아이디어로 썼다고 하니 참 박수가 절로 나오는 작품이다. 또한 계속해서 이어지는 반전은, 그 영어 독해를 못 하는 나를, 일반 도로를 걸어다니면서 “영어로 씌여진 소설책”을 붙잡고 읽게끔 만들었다.  아무튼 굉장히 흥미진진한 책.

다음에 재작년에 공항에서 산 Benjamin Kunkel의 Indecision이라는 책을 읽을까. 아니면 영화로도 유명한…내가 2003년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던 시절, 책 표지 그림에 반해 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읽을까. 생각 중이다. 아무튼…영어 책을 계속해서 읽으니 영어 단어나 독해 속도를 향상 시키는데는 참 도움이 되는 듯 하다. 미국 가기 전까지는 계속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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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순을 보고..

2년 전 한창 인기가 많던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드라마를 새로 보고 있다.

그때 인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못 봤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그 때는 행복했던 것 같다.

아니 행복한 척 했다고 하는게 더 솔직한 것 같다.

행복한 척, 싸워도 안 싸운척,

마음 한구석 홀로 허전해도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났어도 집착하고

정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고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자기 주문을 계속해서 몇년 동안 걸어버린 탓에

그 주문 자체에 길들여버려

내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솔직한 내가 되어

벌거벗은 마음으로,

어느덧 여러번의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20대 중반의 시선으로,

친구들이 결혼하고 일에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러한 세대의 시선으로,

다시 드라마를 보니

참으로 마음에 와닿는

인생의 진리와

어릴 때 몰랐던 사랑의 씁쓸함과

일에 대한 열정이 보인다.

그땐 잘 몰랐고

그냥 마지막 회를 보고선

그냥 마냥 웃기고 사실적인 드라마라고만 생각했는데

스물 여섯, 내 또래 나이 스물 일곱이 되어서 보는 지금,

이 드라마는

웃기기보다는

잔인하게 가슴을 후벼파고

마음 한구석을 씁쓸하게 만들고

아…사랑이란 그런거지…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언제나 마주했던 진심.

여러번 그 진심 때문에 상처도 많이 입었고

덕분에 지금은 상처를 입어도 무뎌 졌지만

후회는 없다.

매순간 난 최선을 다 했고

지나가버리면 잊혀지고 덧없는 약속들이란 것들을

추억때문에 아파해봤자

나만 뒤쳐진다는 것을 깨닳았기 때문에.

예전보다 많이 사랑에도 아픔에도

둘다 둔감해졌다.

그래서일까?

예전만큼 쉽게 감정 표현도 안 된다.

남들은 어른스러워졌다고 하지만

진리라는 것은,

어른스러움 = 무뎌진다는 것이다.

절제할 줄 알아서 감정 내색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무뎌져서 감정 표현을 못 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많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다시는 똑같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사람에게 情주기를 포기해 가는 것 같다.

눈물이 다 나와서 메마른걸까?

나오기를 내면으로부터 거부하는걸까?

가슴떨림이 언제부턴가 약해진다.

가슴시림이 언제부턴가 무뎌진다.

잘 모르겠다.

어른이 된다는건…

인생에 굴복해가는 것이다.

시간에 길들여져 가는 것이다.

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희노애락을 밖으로 표현하고 경험하고 싶은 것 뿐인데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은

그런 나의 소망조차 점점 뺏어가네.

가슴이 따뜻해졌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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