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가시 세우기
나이가 들면서 하나 좋은게 있다면, 상처를 받아도 예전처럼 그렇게 심하게 가슴이 억하게 무너지도록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상처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무딜대로 무뎌진 가슴이 통증을 잘 인식하지 못 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울컥해서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이 한 말 때문에.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동성 친구에게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는데 늘 붙어있는 이성 친구나 애인에게는 늘 3년이란 시간이 가장 관계가 행복할 수 있는 맥시멈인 것 같다. 나에게는 넘지는 말아야 될 내 주위에 선이 있는데 그들은 늘 그 선을 넘어들어온다. 선을 넘어 들어온다는게 무슨 말인고 하니, 친구나 애인으로서는 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데 그걸 넘어 들어오는 것이다. 너무 친해져서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렇게까지 막 말을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류의 어떤 말을 하는 경우에는 갑자기 가슴이 억하고 무너지는 수가 있다. 3년이란 시간동안 방심해 있다가 뒤통수를 한대 후갈겨 쳐 맞는 것처럼 말이다.
고슴도치는 어릴 때부터 잘 길들이면 가시를 바짝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순수하게 부드러운 자신의 뱃면 바닥을 까 뒤짚어서 보여줄 정도로 아주 다정하다. 그러나 주인 외에 다른 사람이 오면 가시를 바짝 세우고 늘 긴장하고 있다. 온몸이 경직된 것 마냥. 그래서 다른 이들은 고슴도치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존재이다. 그러나 이 고슴도치에게는 늘 가시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가까운 이라도 어느 정도까지의 거리는 늘 유지하게 된다. 뱃면을 뒤짚어서 보여주었던 늘 사랑스런 주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가시를 세우고자 한다면 뱃면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가시를 바짝 세우면 주인은 더이상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다.
나에게는 늘 가시가 있다. 아무리 평소에 뱃면까지 보여줬던 이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멀리 그 사람을 떼어내 버릴 수 있는 그런 경계 방어 체계선이 있다. 그런데 나와 가까워진 이들은 늘 그걸 잊는 듯 하다. 난 그냥 물렁한 인간처럼 보이나보지. 그 경우엔 다시 가시를 세우게 된다. 바짝해서 그 사람이 어느 정도로는 가까이 다가올 수 없게. 아무리 나를 생각했다 하더라도 선을 넘은 말은 나와의 관계에서 있어서는 내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나와 매우 친한 이가 있다. 가끔해서 선 경계를 왔다갔다 거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엔 좀 욱신거린다. 너무 가까워서 그런 일이 발생한 줄도 알고 나를 생각해서 말했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는 건 싫다. 다시 가시를 세우고 거리를 두는 수밖에. 그 관계가 참… 아쉽다. 흠. 늘 3년 쯤 정도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만 늘 그 정도 쯤이다. 이곳을 떠나는 마당에 이렇게까지 되는건 별로 원하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