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보내는 기분..
친구들이 하나씩 청첩장을 보내온다. 예전엔 선배들이나 아는 언니들, 오빠들 청첩장이었던 것이 이제는 어느새 친구들로 바뀌었다. 제일 처음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땐 “말도 안 돼! 벌써?” 이랬던 것이 어느덧 “이야. 날 두고 니가 먼저 가네. 정말정말 축하해.” 이런 말들로 바뀌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나도 스물 여섯이지만 스물 일곱이라고 봐야하고 어느덧 사회인이라고 청년이라고 봐야할 그런 나이. 한 가정을 꾸리고 누군가에게 책임이 되고 의지가 되고 그럴 존재로서 홀로 우뚝 서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 같이 뛰놀며, 누굴 좋아하네. 누군 왜 날 안 좋아할까. 코카와 펩시라는 별명을 붙여 둘이서 키득거리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이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이나 갈 수 있을까? 모의 고사 성적표를 붙잡고 “헐- ” 이러면서 고민하던 그 모습도 떠오르고, 어느 선생님한테 혼났네. 어느 선생님은 날 굉장히 싫어하네. 하며 미간에 주름 잡히게 흥분해 하던 내 모습과 그 아이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선생님한테 안 들키고 수업시간에 만화책 보는 방법은 없을까? 요즘 신간은 무엇인가? 만화방에서 선생님한테 안 걸리고 빌리는 방법은 뭘까?”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만화를 빌려서 나서는 순간 만화방 문 앞에서 선생님한테 딱 걸렸던 기억도 난다. 오늘 매점엔 피자호빵이 새로 들어왔네. 국진이빵 새로운 스티커는 또 어떤게 있을까. 고민하며 종이 치자마자 4층에서 지하 1층 매점으로 후다다닥 2계단 씩 손잡고 뛰어내려가던 기억이 나고, 급식비 꽁쳐서 무얼 살까? 식당 아주머니는 왜 남녀차별을 하는가. 남자여자 밥 주는 양이 다른가. 항의해야 하네마네. 대표로 불고기와 상추를 더 받아와서 다른 아이들에게 나누어줬던 기억도 난다. 수학여행 때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다 옷 사고 밤 늦게 들어와서 문앞에서 엄마한테 크게 혼났던 기억도 나고 청바지는 길다고 그 자리에서 엄마한테 바지가 짤렸던 기억도 난다. 어떻게 하면 교복을 이쁘게 입을 수 있을까? 추천해준 세탁소에 맡겨서 예쁘게 교복을 리폼해서 입었던 기억이 나고 학원 끝나고는 무얼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학원 앞에 맥도날드가 생겨서 좋아라 매일매일 가던 기억도 난다. 학교 후문 호떡은 어떻게 10분 내에 나가서 사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주한테 복장 검사 안 걸릴까? 오늘은 돌림일기장에 어떤 내용을 쓸까? 매일매일 아침 저녁으로 고민하던 기억이 나고 오늘은 또 교장한테 어떤 투서가 들어갔나. 온 학교의 이슈였던 그 1년에 한번씩 크게 벌어진, 3번의 “大”사건들도 기억난다. 오늘은 어느반 누가 야자시간에 걸려 심하게 두들겨 맞았네. 그 대상이 우리였던 날. 남학생들이 우물쭈물 거리는 바람에 내가 선두로 대걸레 자루로 심하게 두들겨 맡고 그 친구는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 했던 기억이 난다. 시험 끝나면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들어선 영화관에서 두손 꼭 붙들고 보던 영화 “위대한 유산” 속, 눈부신 초록빛 정장의 귀네스 팰트로우에 “우아-” 소리지르던 그 모습도 기억이 난다. 충무로의 대한극장이 공사하기 전, 대한민국 최고의 대형 스크린 앞에 걸린 마지막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아야겠노라며 매우 추운날 충무로로 향했던 기억도 난다. 체력장 때 어떻게 하면 한바퀴를 덜 뛸 수 있을까? 신체검사 때 어떻게 하면 몸무게를 줄일까? 반장이었던 내가 학생들의 몸무게는 2kg 씩 빼주고 키는 1-2cm씩 늘려 써주었던 기억도 나고, 정작 난 반장이라 반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고 카운트하는 데서 윗몸일으키기를 하다가 잘 못 해서 남자애들이 놀렸던 기억이 난다. 독어회화 선생님 울라프를 위한 비트박스는 어떻게 준비할까? 고민하며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이 나고, 영어회화 시간에 잼있게 보았던 토이스토리 1,2도 기억난다. 일어회화 억양은 어떻게 하면 간질나게 할 수 있나? 서로 비웃으며 연습했던 것도 잼있었고 스튜어디스 출신의 패셔니스트 독어 선생님의 호피무늬 치마와 망사 스타킹 등 독어선생님의 패션은 매일매일의 핫 이슈였다. 너무 지적이며 우아한 외모 덕에 남학생들의 로망이었고, 여학생들의 우상인 독어선생님이 어느날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혼 했었냐며 경악해하던 우리 모두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학생 주임이었던 국어 선생님의 암내는 어떻게 피할 수 있나?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던 기억도 나고 수학 선생님이 번호 불러서 문제 푸는 것. 오늘은 피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오늘의 날짜와 관련된 모든 연산을 미리 해보고 조짐이 보이는 날엔 미리 문제를 풀어보며 예습했던 기억도 난다. 류진식 영어선생님은 오늘은 도대체 또 무슨 이상한 단어를 외우라고 할까? 그 때는 쓸데 없는 단어라고만 생각했던 단어들이 나중에 미국에서 온 교환학생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설명할 때 아주 유용했고, 알고보니 , TOEFL, SAT, GRE 단어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기했다. 지학선생님이 수능 출체 위원으로 들어갔다면 수능 지학 문제는 도대체 무슨 문제가 나올까? 토론했던 기억도 나고 교련 선생님은 오늘은 또 어떤 여학생 힐끗하나? 이쁜 여학생만 점수를 잘 준다는 뒷 소문도 암암리에 퍼졌었던 기억도 난다. 옆집에 살며 담임인 한문 선생님과는 어떻게 하면 악연을 끊을 수 있을까? 반장인 나로서는 그 당시 최대의 고민이 아닐 수 없었고, 1학년 때 담임이었던 생물 선생님 시간에 안 자고 눈 뜨는 방법은 무엇일까? 너무 괴로워했던 기억도 난다. 윤리 선생님은 오늘은 또 어떤 창의력 퀴즈를 낼까? 그리고 누가 풀까? 늘 그 문제를 제일 먼저 그리고 논리적으로 푸는건 단 한명이었다. 진짜 일본 사람처럼 생긴 일어 선생님은 오늘은 또 누구 사주나 손금을 봐주실까? 과거에 대해선 기막히게 맞췄지만, 미래에 대해선 아직도 의심이 가는 나의 손금. 그건 맞나안맞나 나중에 두고보도록 하겠다. 우리만의 아지트 5층 미술실 앞에서 이야기 하다가 미술 선생님과 친해져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도 난다. 미술 선생님의 쌍둥이 아들 얘기는 오늘 또 뭘까. 늘 설레어했었다. 워낙 역사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또 역사를 늘 이야기처럼 편하게 풀어서 재미나게 설명하는 그 국사 시간이었기에 내 국사책은 누구보다도 필기가 잘 되어있었고, 때문에 영어과에서는 내 책을 빌려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내가 중요하다고 체크해놓으면 그게 늘 시험 문제에 나왔으니까 말이다. 나중엔 영어과 말고 독어과, 중국어과에서도 내 책을 빌리러 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누구누구 순으로 책을 빌려주나. 장부를 적어놓고 친한 친구한테는 먼저 빌려주던 기억도 난다. 저녁 시간에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갖힌 친구한테 휴지를 빌려줄까 말까. 다급해하는 우리반 남학생에게 장난을 치며 놀려댔던 기억도 나고, 그게 한명이 아니라 3명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학교 전체 집중 식중독 사건 이후, 우리반은 어머니들이 직접 저녁 도시락을 싸주셨고, 수능일이 가까워질 수록 엄마들의 도시락 경쟁엔 불이 붙어 진수성찬이 되어갔다. 보쌈, 양념통닭, 물냉면, 뚝배기 불고기, 돌솥 비빔밥, 모밀국수, 팔보채, 빈대떡 등등 평소엔 먹을 수 없은 그 음식들이 준비되어졌고, 오늘 저녁엔 또 어머니들이 어떤 음식을 준비해주실까? 늘 저녁 시간을 팔을 괴고 기다렸던 행복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1학년 합창 대회 독주였던 피아노와 플롯 연주자들이 다 우리반이었고 난 연주자들이 아니었지만, 이들의 친한 친구였고 또한 예리한 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피아노 연주가 틀렸네. 플룻이 틀렸네. “ 강당에서 연습하던 그들을 콕콕 찍어주었었다. 5월의 나른함 속에서 적막한 강당을 홀로 채우던 피아노 소리와 플롯 하모니는 더없이 평화로웠고 아직도 그 행복한 느낌은 잊을 수 없다. 늘 영화에 빠져있었던 나에게 틈날 때마다 했던 영화 평론과 만화, 책 평론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수 II 시간에 어떻게 하면 좋을 자리를 맡을 수 있을까 달려갔던 기억이 나고 비록 다른 반이지만 쉬는 시간엔 달려나가 다른 반에서 얘기하고 놀다 들어오던 기억도 난다. 몰래 정문 빠져나가서 상가에서 먹고 들어오던 냄비 우동과 참치 김밥과 호떡도 참 맛있었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맨날 쪽지를 주고받고 자리 제비뽑기를 조작해서 거의 1년 내내 짝을 했던 기억도 난다. 서로 집에도 놀러가고 덕성여대 앞에도 만화보러 가고 미국에서 3년이란 시간동안 학교를 다닌 덕에 영어엔 장애물이 없었던 그녀석에게 영작 시간과 영어 회화시간에 내가 잘 하지 못 해, 내가 한국말로 하면 바로 번역 해주던 그 고마움도 있을 수 없고 회화 시간에 영어나 독어나 일어나 누구 발음이 정확하네 마네 티격태격 거리던 그 일들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제헌절 날, 우리 아빠 차를 타고 같이 놀러갔던 가평의 그 계곡에서 물놀이하며 뛰놀고 사진도 찍고 놀던 그 기억도 행복했고 나중에 꼭 유학 같이 가서 공부하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하던 그 약속도 생각난다. 대학 와서도 서로 학교에 놀러가서 짜장면 시켜먹고 영철버거 먹고 학교 구경 시켜주고 같이 놀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수많은 꿈과 추억을 함께 보냈던 고등학교 친구들인데, 나의 소중한 3년을 함께한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인데, 연이어 결혼한다고 하니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원섭섭하다. 딸 시집 보내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백년가약을 맺는 그런 행사. 고등학교 때 생각했을 땐 너무나도 먼 미래로 그려졌던 그 일들이 지금 내 주변에서 나의 친구들을 둘러싸고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행복하고 뿌듯하고 서운하다. 아….기분 참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