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어렸을 적 나는 책을 무척이나 좋아라했다. 책만 옆에 있으면 장소가 어디든 책 속 환상 세계에 몰입해서 현재 내가 어디에 가는지 모를만큼 책을 끼고 살았다. 어두운 곳이든 밝은 곳이든 가리지 않았고 덕분에 2.0이던 시력은 초등학교 2학년 때 0.2, 0.3의 시력으로 완전 나빠져 버렸다. 5-6학년까지도 내성적이던 성격의 나에게 유일한 마음의 탈출구는 바로 책이 있고, 내 물건들 중에 책이 한권이라도 없어지면 어떻게서든 찾아내고야 마는, 내 마음의 보물 1호였다.
그러던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면서, 입시라는 신세계를 접하면서 책은 어느새 내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내 곁에 남아있던 건 오직 교과서와 학교나 교육부 추천 도서 등이었다. 오히려 6학년 여름 방학 때부터 나는 영화에 심취해 있었고 영화나 비디오는 한달에 한 40편 정도씩, 어떤 날은 하루에 3-4편까지 볼 때도 있을만큼 영상 매체에 나는 빠져들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나만의 세계에 심취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기 시작한게… 예전엔 집 밖으로 굳이 나가지 않아도 내 상상 속의 세계에서 나는 숲 속을 헤매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모험을 하고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은 뒤로 나는 어느샌가 고인물이 오랜 시간 지나 썩어가듯…그냥 그렇게 정체되어 있었다.
대학교 와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여전히 나는 책을 읽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날, 내가 그때 만나던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완벽히 내 이상형이야. 그런데 딱 한가지가 너무너무 아쉬워. 책을 잘 안 읽는 거 말이야.”
너무나 창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극을 받아 책을 읽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에 만났던 사람에게도 또 그런 말을 들었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남이 강요하는 책 읽기는 순간적인 자극은 되지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그 사람들로 인해 한두권 책은 사보았지만 여전히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건 미국에 유학 나오고 나서부터이다. 미국은 인터넷이 한국보다 엄청나게 느리고 더군다나 한국 사이트에 접속 하면 로딩하는데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한다. 하루 일과였던 네이버 뉴스 보기를 끊고 나니 할 일이 없을 때, 어느 선배가 책 하나 읽을래? 하면서 책을 주었더랬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책이었는데 너무나 정신 없이 빠져 들었다. 뉴스를 안 보니 무언가 한글로 쓰여진 것을 보고자 하는, 그 본능이 더욱더 달아올라, 한글로 쓰여진 책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게 되었고 그러던 중, 알라딘 US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오프라인 매장도 조금 멀긴 하지만 한 40분 운전하고 가면 되는 거리에 2군데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책을 다시 본격적으로 읽게 된 것은. 박사 과정으로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정작 쉴 때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고 커피를 마시고 드라마를 보고 만화책을 보고. 이게 대부분의 박사들이 쉬는 모습이다. 참으로 비생산적이다. 몸이 피로한 것도 맞지만, 그래서 쉬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래도 쉬면서 생산적일 수는 없을까? 그때 내가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목욕하며 책읽기였다. 컴퓨터를 오래 하다보면 내 앉은 자세가 그리 좋지는 않아서 그런지 어깨가 자주 아프다. 그럴 때 허브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린, 따뜻한 물에 오래 앉아 있으면 어깨가 시원하게 풀어진다. 이때 책 한권을 들고 들어가서 머리를 욕조 난간에 편안하게 뉘이고 팔을 걸치고 책을 읽다보면 책도 참 잘 읽힌다. 게다가 어깨나 목에 쌓인 피로도 잘 풀리니 이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가끔이지만 이렇게 책을 읽어가면서 무언가 머리 속이 시원하게 뒤짚어지는 느낌이 든다. 밭을 일굴 때도 새 씨앗을 심을 때면, 흙을 다 판 다음에 뒤엎고 흙을 고루 섞어주지 않는가. 그렇게 되면 양분이 골고루 잘 섞여 새로운 씨앗이 자랄 때 골고루 양분을 전해준다고 한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 저 책을 읽다보면 이것저것 내가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뇌의 안 쓰던 부분들이 자극되어 상상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오늘 내가 읽은 이 책,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는 이 독서 습관에 좀더 고난이도의 테크닉을 제안한다. 처음에 이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생각했다. 열권의 책을 동시에 읽으면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오히려 그게 더 집중력을 향상시킨다고. 그래서 나도 해보았다. 어떤 책을 읽다보면 끝까지 쉬지 않고 한숨에 다 읽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재미있는 소설책의 경우, 또는 자신이 관심있는 그 어떤 분야에 관한 것이라면 쉬운 일이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경우에 대해서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어느 한 책을 읽다가 호흡이 힘들어지고 집중력이 공기 중으로 분산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또 다른 책을 꺼내 들어보자. 그러면 뇌는 또다시 새로운 다른 향기의 책을 통해 숨쉬고 다시 새롭게 호흡하게 된다. 그리고 집중해서 그 새로운 책을 더 빠른 속도로 볼 수 있게 한다.
책을 읽는데에는 의식적으로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밥 먹을 때나 잠깐 쉴 때, 목욕 할 때, 화장실에서, 어느 곳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짜투리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그냥 멍하니 아무 생각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지는 않은가. TV를 보면서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럴 때 책을 보란 것이다. 내가 하는 방법은, 아침에 잠에서 깨서 약간 잠시 완전히 달아나지 않고 내 눈꺼풀을 억누르고 있을 그 무렵에, 머리 맡에 놓여진 책을 한권 읽는 것이다. 어렵지 않고 가벼이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라면 읽다보면 서서히 잠도 깨고 머리도 맑아지고, 또 하루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목욕을 하거나 밥을 먹을 때에도 책을 펴놓고 읽다보면 책은 우리에게, 굳이 어떤 장소에 가지 않아도 다녀온 것처럼 잠깐의, 상상 속의 산책을 허락한다.
책을 여러권 읽기 시작한 건 얼마 전부터의 일이라, 여러책으로부터의 아이디어가 조합이 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일으키는 궁극의 경지에까진 아직 이르진 못 하였지만 계속해서 훈련하다 보면 언젠간 되지 않을까?
책을 벗 하라. 책보다 좋은 친구는 없고 책보다 더 좋은 바캉스도 없다.